밤을 새는 배덕감에 대하여.

나열, 감정의 나열

2017. 10. 19. 06:33

  밤을 새는 배덕감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밤을 새고 싶을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이 밤을 그냥 보내기 싫을 때, 우리는 수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잘까, 아니면 맥주라도 한 잔? 아니면 영화 한편 때리고 잘까? 하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밤에 잠을 안자면 살찐다, 바이오리듬이 깨진다, 평일에 오히려 더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혈압에 안 좋다, 당뇨가 생긴다, 등등 수많은 걱정거리들과 지금은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된다는 올바른 도덕감이 잠을 자야된다는 의무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오늘, 나는 잠을 청하지 않았다. 그것은 엄청난 건강의 위협이며, 미래에 대한 잘못이고, 내 지난 인생들을 떠올리는 비도덕적인 행위 중 베스트 50안에 들을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잠을 청하지 않고 그저 맥주 한 캔과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행위는 아마도 다음날의 나에게 해야 할 것들을 놔두고 무엇을 했느냐 라는 자괴감을 심어줄 것이다.
  하지만 뭐 어때 내일은 주말인데, 하지만 내일도 무언가를 해야지, 언제까지나 주말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쉬는 것도 일이다, 하지만 그 쉬는 시간에 무언가를 한다면 그게 더 보람차지 않을까. 라며 아직도 머리는 싸운다. 하지만 맥주 한 캔을 딴 순간, 그 걱정을 싸그리 사라진다. 아아, 그래. 나는 알콜중독자였던가...!
  하지만 밤을 새는 것에서 오는 배덕감이란, 마치, 규범화된 일상에, 자유를 불어넣어주는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외치는 오늘 하루만은! 이라는 찬스는 또 다시 잠을 잘 때 쯔음에 나를 괴롭히겠지.
  하지만 밤을 새고 있자니, 나만 이런 배덕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조용한 방안으로 침범하는 오토바이의 비명소리처럼, 나 말고도 배덕감을 그것도 알코올이 아닌 미친 짓으로 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짜증 섞인 안도감을 갖는다. 새벽에 미친 듯이 달리고 싶었구나. 그러다가 뒤진다 너. 하지만 먹고 있는 맥주를 보자니, 맥주도 나에게 그런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뒤진다 너.
  하지만 밤을 새는 것에 대한 배덕감이란, 어렸을 적에 오락실을 가지 말라는, 어렸을 적에 땡땡이를 치면 안된다는 도덕적 신앙심에 어느날, 땡땡이를 경험한 신자처럼, 오락실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며 오는, 그런 야릇모릇한 맛이 있다. 그 배덕감은 너무 자주하면 감이 떨어지고, 너무 안한다면 감이 너무 커져, 결국에 괄약근의 운동까지 침범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 가끔은 배덕감을 의무적으로 느껴주어야 별 탈이 없다.
  아아... 설마 이것도 나의 계획적인 배덕감 갖기 캠페인이었단 말인가...! 역시나 나는 나의 머리에 대해 찬사를 금할 수가 없다. 마치 몸이 비타민 C가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귤을 먹고 싶게 내 육체의 야리꾸리한 화학작용을 통해 머릿속 ‘오늘의 먹고 싶은 무언가 베스트 3’에 귤을 넣어버리는 것처럼 나의 머리는 아마 나의 괄약근 운동과, 익숙함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를 포착해 아마 나의 행동에 지대하게 많은 영향권을 행세했을 것이다. 역시나 나의 머리다. 덕분에 맥주를 따며 사라진 윤리와 배덕감에 대해 이상한 자신감의 치솟음을 느끼며, 오늘은 맥주와 도리토스로 푹 시원하게 잘 잘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201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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