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점순이와 초콜릿)

잡담

2017. 10. 19. 00:28

“너 아직 초콜릿 못받았지?”

뭐가 좋은지 점순이가 까르르 웃는다.

“…꺼져”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일하던 손으로 점순이에게 꺼져라는 싸인을 보넸다. 그랬더니 가는 기색도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냐 싶어서 그 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 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집어들더니 이를 꽉물고 초콜릿을 꺼내 집어 던지고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을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었다.

어쩌다 동리 어른이,

“너 얼른 시집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세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러움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지게 후려때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초콜릿을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너 아직 초콜릿 못받았지?”는 다 뭐냐, 그렇잖아도 쏠로라 초콜릿하나가 아까운 심정인데.

땅에 떨어진 초콜릿을 주섬주섬 줏어먹으며 내려간 담날 저녁 나절이었다. 여자에게 받은 초콜릿을 못먹어 굶주린 배를 달래며 산을 내려오니까 어디서 초콜릿을 녹이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이거 뉘 집에서 초콜릿을 달이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레졌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걸터 앉았는데, 아 이게 치마 앞에다가 조그마한 초콜릿을 올려놓고,

“이놈의 초콜릿! 녹아라, 녹아라!”

요렇게 암팡스레 녹이는 게 아닌가. 그것도 잘 녹이면 모른다마는 아주 초콜릿을 만들지도 못하게 흙을 살금살금 뿌리는 것이었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휘둘러보고야 그제서 점순이 집에 가득 초콜릿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잠시 누그러져서,

“이놈의 계집애! 주지도 않을 초콜릿 왜 흙을 뿌리고 그러니?”

하고 슬쩍 말을 건넸다.

그러자,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무슨 모양을 만드는 듯, 싶더니 녹아라, 녹아라 하고 흙을 뿌리는 것이었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초콜릿을 녹이고 있다가 초콜릿도 받지 못한 놈, 너 보란 듯이 내 앞에서 흙을 뿌리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튀어 들어가 그럴꺼면 나나 줘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왜냐하면 말을 하면 할수록 초콜릿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는 초콜릿에 굶주려 있었다.

“아, 이년아! 초콜릿을 아예 버릴 터이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타리 밖에 있는 선 나의 손을 겨누고 정확하게 초콜릿을 내팽기친다.

“에이, 더럽다!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게 돌아내리며 점순이가 준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점순이가 준 것은 점순이표 초콜릿 페레로로쉐였다.

 

 

 

 

2010.2.12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러다가 뼈만 남는게 아닌가 싶어.  (0) 2017.10.19
눈꽃  (0) 2017.10.19
취미는 사치.  (0) 2017.10.18
심심해서 방문자 통계를 보다가...  (0) 2017.10.18
덮어놓고 찍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0) 201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