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Panic's torso

나열, 감정의 나열 69

카테고리 설명
  • 나는 항상 너의 놀라움이 되고 싶었다. 지루한 현실에, 흥미가 떨어지는 일상에, 나는 항상 너에게 특별함을 주고 싶었다. 그 겨울도 그랬다. 너가 학원을 끝나고 내려오는 그 건물 입구에서, 나는 조용히, 사람들의 시선을 빗겨 너를 기다렸다. 그리고 니가 내려오고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보며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나는 살며시,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나타나 커다란 곰인형을 주었다. 너는 너무나도 기뻐했다. 갑자기 나타난 너의 연인에, 나의 키스에. 편지에서 삐삐로, 핸드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점점 발달해가는 통신수단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 없이 소비되어가는 그런 인연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기다림을 좋아했다. 당연히 그 기다림이라는 건, 상대방을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기다림이 아닌, 그 사람을 떠올리고..

  • 나만의 성역에서 아무도 들이지 않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면, 가끔씩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온다. 몇몇은 그저 문을 두드리기만 하고 사라지고, 몇몇은 그 앞에 서 있는다. 그러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일어나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문 앞으로 다가가 그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생각을 한다. 지금 밖에 있는 것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내가 반응이 없다 싶으면 누군가는 돌아가고, 누군가는 계속 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나는 관음증에 걸린 사람처럼 문에난 구멍을 통해, 그것을 지켜본다.

  • 가끔씩 감성이 터지는 밤이면, 육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세상의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 동안 지나쳐왔던 사소한 것이 갑작스래 이뻐보이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보며 나는 바보같이 웃는다. 밤공기가 폐부깊이 들어올때면, 이 밤의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 날만은 무언가 간질간질하고 행복한일이 생겼으면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지나갈때면, 누군가가 보일때면, 그 바램이 슬그머니 숨어 그저 아무일 없다는 듯 그 순간을 넘기곤 한다. 남들이 보면 어떻게 보일까. 기분 좋아보이는 쫄보랄까, 찐따랄까. 아니면 그저 반주를 살짝 걸쳐 기분이 좋아진 어떤 한 사람으로 보일까. 하지만 그것도 좋다. 이렇게 무언가가 아름다워 보이는 밤이면, 이 넓은 세상에 홀로 재밌게 돌아다니는 날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 하늘색이 아팠다.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하늘색 가방, 그녀가 귀에 걸고 다니던 하늘색 큐빅, 그녀의 하늘색 손가락. 그녀는 하늘색을 사랑했다. 비록 그녀가 하늘색을 너무나 사랑해, 하늘색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흐릿한 하늘색을 띈 물건을 보면 이내 이야기를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그것에 시선을 뺏겼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녀가 하늘색에 대한 어떤 마법이 걸려있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뭐랄까... 그녀의 시선을 계속 훔치는 마법이랄까? 그래서 나는 하늘색을 질투하기도 했었다. 하늘색 아이스크림, 하늘색 지갑, 하늘색 폴더... 그래서 나는 하늘색에 빠져버린 그녀에게 바치는 선물조차 그 색깔에서 벗어나고자, 무던한 많은 노력들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이 조..

  • 나열, 감정의 나열

    NEW

    2018.01.14
    댓글
  • 그녀가 말했다. 자신에게 남친이 있다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알게 되면, 주변사람들의 접근이나, 그녀의 행동반경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사실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거라고.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알았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 나도 이제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순간, 우리의 찐했던 1년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그 순간들이 그렇게 무너지고야 말았다.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 물론 내가 그녀의 곁에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버렸을 때, 그것이 그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너는 충분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굳이 나를 기다리며 늙어가지 말라고. 너의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