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만지기

나열, 감정의 나열

2017. 10. 19. 06:31

  고양이를 봤다. 우거진 잡초로 뒤덮은 길 한 가운데 앉아있는 고양이. 고양이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내가 잡초길을 지나가자, 녀석은 길 한가운데에 앉은 체로 물끄러미 나를 처다보았다. 그리고 오는 짧은 적막.
  정말로 녀석이 나를 기다렸는지, 아니면 그의 주인을 기다렸는지, 아니면 단순히 인간의 손길을 기다렸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녀석이 무척이나 반가웠고 오랜만에 녀석의 손을 붙잡고 놀고 싶어졌다.
  만져도 괜찮은걸까 녀석의 꼬리가 계속 하늘을 향했다가 바닥을 친다. 벌래가 녀석을 귀찮게하나보다. 나는 조심스럽게 녀석에게 손을 내밀어보지만 녀석은 그저 나의 눈만을 계속 쳐다본다. 약간은 졸린 듯한 녀석의 눈에 비친 나의 손가락들은 하염없이 초라해보이지만, 나는 나의 이 초라함에 녀석이 양념을 쳐주었으면 했다. 나의 손과 녀석의 조그마한 발. 그것이 만난다면야 나는 이 지독한 초라함에서 조금은 회복되지 않을까. 
  개들의 천국이 되버린 공원에 홀로 남겨진 고양이... 그건 아마 꽤나 쓸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고양이 특유의 냉소적인 눈빛으로 변해 개들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도대체 서로 짖는거야. 서로 부둥켜앉고 있을시간도 부족한 이때에...
  그렇게 녀석은 한껏, 개들의 모습을 비웃지만 씁쓸하기도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슬플지도 모른다. 그래서 녀석은 나의 손을 바라보며 그것을 잡아야 하는 것인가 말아야하는 것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질적인, 부족함.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녀석이 나의 손을 바라보며 자신의 발을 내밀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녀석은 아직 나의 초라한 손을 겪어보지도 못하였는데, 녀석이 그것에 대해 다 알고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
  나의 초라한 손. 녀석이 아마 내 손에 자신의 발을 갖다댄다면 그것은 본질적인 부족함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믈스믈기어나오는 욕망에 대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아니 대다수가 그렇겠지.
  혹은 녀석이 이미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서로의 욕망을 푼 두마리의 생물이 현자타임을 얻어 해어짐을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미 저것은 본질적임을 채워주지 못한다고 이미 경험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와 내가 만났던 수많은 고양이들과 사람들이 다르듯, 이번이 그 본질을 채워줄 사람이지 않을까 하고 나는 녀석에게 눈빛으로 말해보지만, 녀석은 이미 본질적임을 채워 줄 대상이 당신의 종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이미 경험으로 얻은 것들을 종합해보면 그 확률은 더 높아진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너의 용기에 달렸다며 세상 모든 것이 똑같지 않듯 모든 답들을 다를 수가 있고 그 해결방법 또한 다를 것이라며 새로운 시도의 의미로 녀석에게 나의 초라한 손을 더욱더 들이 밀었지만, 녀석은 나의 손을 씁쓸하게 처다보며 등돌려 나를 떠나버렸다. 녀석은 오늘 새로운 시도를 하기를 포기하였으며 나는 결국 녀석을 만지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고양이를 몰랐다,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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