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나열, 감정의 나열

2018. 3. 18. 06:48

 

 

  가끔씩 감성이 터지는 밤이면, 육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세상의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 동안 지나쳐왔던 사소한 것이 갑작스래 이뻐보이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보며 나는 바보같이 웃는다.

  밤공기가 폐부깊이 들어올때면, 이 밤의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 날만은 무언가 간질간질하고 행복한일이 생겼으면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지나갈때면, 누군가가 보일때면, 그 바램이 슬그머니 숨어 그저 아무일 없다는 듯 그 순간을 넘기곤 한다. 남들이 보면 어떻게 보일까. 기분 좋아보이는 쫄보랄까, 찐따랄까. 아니면 그저 반주를 살짝 걸쳐 기분이 좋아진 어떤 한 사람으로 보일까.

  하지만 그것도 좋다. 이렇게 무언가가 아름다워 보이는 밤이면, 이 넓은 세상에 홀로 재밌게 돌아다니는 날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물론 옆에 이런 기분을 같이 느낄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은 약간 슬프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 밤이 사라져가는 것이 더 슬프다.

  가끔은 이런 밤만 계속 된다면, 어떤 고민조차 하나 없이 계속 웃으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이상도, 현실도, 세월도, 그 모든 것을 잊은 채.

  그런데도, 그럼에도, 그래서 또 이런 세상을 만든다면 천국이 아닐까 생각도 하지만, 이상이라는 단어 하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준다. 눈을 감으며, 다가올 내일에 대해.

  엄청 고되고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삶이라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에, 가끔오는 감성터지는 밤 산책은 정말로 작은 휴식이자, 이 빌어먹고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그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해주는 빌어먹을 박카스같다.

 

 

 

 

 

 

 

 

 

 

 

 

 

 

 

(프로젝터 빔으로 한 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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