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케이크

나열, 감정의 나열

2017. 10. 19. 06:17

하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하얀 눈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로 세상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 날을 생각하자니, 그 날이 크리스마스인건지, 아니면 그 전인 건지, 혹은 그 후인건지 잘 기억은 나지는 않았으나, 대충 어딘가의 크리스마스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소녀를 발견했다. 아름다운 소녀. 나와 눈을 마주치자, 소녀는 방긋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
하지만 힘이 달리는지, 내가 있는 곳까지는 그 말이 전달되지 못했다.
‘…아마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거겠지…….’
그럴 것이다. 지금이 크리스마스 전이라면, 혹은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면... 대충 그런말을 했을 것이다. 그래, 그래서 소녀는 웃고 있는 거겠지.
나는 소녀를 향해 웃어보였다. 소녀는 로맨스를 탐하는 존재니까. 그러니까 그런말을 사랑한다. 그래, 당연한 이야기지..
나는 소녀를 다시 처다보았다. 소녀는 뭐가 좋은지 계속 실실 웃으며 발그래진 볼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다시 말했다.
“케이크 너무 좋아!”
“……엥?”
그 순간이었다. 그동안 하얀 눈이라고만 생각했던 흰 물체는 생크림이 되어 세상을 뒤엎었고, 세상은 철퍽철퍽 소리와 함께 묻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를 향해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덮쳐왔다.


‘……제가 만든 케이크에요.’
그녀는 수없이 이 말을 연습했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것 같은 말이었어도 그녀에게는 엄청 조심스럽고, 엄청 부끄러운 말이었다. 예전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어울리지 않는 고민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심각했다. 만약 그가 필요없다고 하면 어쩌나, 왜 만들었냐고 하면 어쩌나, 맛이없다라고 하면 어쩌나, 혹은 그럴리는 없겠지만, 맛있다라고하면 어쩌나...
그녀는 별 말도 안되는 상상을 계속 곁들이며 그 대처법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지? 혹시 이 케이크 모양이 이상하다고 하면 어쩌지?’ 이상한 고민 하나에도 그녀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언니! 이거 파는 거 맞아? 왜케 맛이 없어?!”
어린 소녀가 가리킨 그곳엔 그녀가 고민하던 케이크가 뭉게져 있었고, 어린아이는 못 먹을 것을 만졌다는 듯이 땅에다 대고 ‘이건 지지야, 지지.’라며 케이크 묻은 손가락을 비비고 있었다.
다 큰 소녀는, 아니, 그녀는 화가난 듯이 말했다.
“예은이 너~!”
 그녀의 원래성격을 찾은 듯, 그녀는 씩씩하게 그리고 어느 차가운 도시의 따듯한 아녀자처럼 작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거 내가 만든거란 말야!”
“히힛 어쩐지...”
그녀의 외침에 어린 소녀는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그녀의 화난 표정은 상관 없다는 듯,
역시나 가끔씩 오는 이 작은 꼬마 손님이 오늘도 일을 저질러 버린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지 뭐.


-終



이글루스 가든 - 영화 제목으로 글쓰기 15제

 

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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