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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감정의 나열

차가운 겨울비, 카페

 비가 질척거리며 내리는 어느 오후의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어제와 같이 손님들을 맞으며, 추운 겨울날의 비가 얼마나 지독한지 손님들이 달고오는 차가운 빗방울 사이로 느끼고 있었다.
  “밖이 많이 춥죠...?”
  이 때가 아니면, 춥다는 말이 이렇게나 따듯하게 들려올 수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그들을 위해 말려둔 작은 수건을 건네며 웃었다. 그러면 그들은 카페의 온기에 만족한 것인지, 수건에 만족한 것인지 항상 이맘때면 나의 수건을 받으며, 밝게 웃어주었다. 그러고는 그들은 유자차나, 모과차를 시키기도 했다. 아마 이 날이 제일 유자차가 잘나가는 날이 아닌가 싶다.
  하여튼 이런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차라리 차가운 빗방울을 맞이한 손님들이 비에 젖어버리는 것을 포기한 체, 그저 따듯한 티 하나와 난로의 온기를 느끼며, 몸을 녹이길 바랬다. 그러다보면, 그들은 이 어중간한 시간에 녹아 잠시나마 여유를 취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경계가 모호한 날들은 이때가 오후 5시인지, 오후 3시인지 그것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똑같은 어두운 하늘에, 그렇다고 아주 어두운 것도 아닌, 빛이 있는 하늘. 그래서 이런날 찾아온 손님들은 대부분이 시간에 잘 녹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그냥 포근하게 이곳에서 잠시 회색빛 세상에 취해 앉아 있길 바랬다. 이 어둑어둑한 세계에서 카페의 조그마한 불빛은 그들에게 작은 온기였으니까... 나는 틀림없이 방황하고 있는 그들에게 작은 쉼터 같은 공간이 되고 싶었다.


  이런 날엔, 창밖으로 느껴지는 회색빛 세상 속에서 노란 우산이, 혹은 빨간 우산이 가끔씩 눈에 박히기도 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역설적이고 매혹적여서 가끔 주문을 받다가도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원래 푸르렀던 지구에 색을 앗아가 놓고는, 그 색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 원색의 유혹. 하지만 마냥 그것들을 지켜볼때면, 사실 난 회색빛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는 희망의 색이 노랑 아니면 빨강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오늘도 따듯해진 공기속에서 커피잔을 들고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노랑, 파랑, 초록, 빨강...


딸랑
  맑은 종소리는 손님을 가리켰고 손님들은 우산을 써도 비를 피하지 못했는지, 한사코 문 앞에서 자신의 옷을 털고는 카페로 들어왔다. 마치 자신의 아지트가 더럽히지 않으려는 듯이.
  행복했다. 그래, 나는 이런 오후의 시간을 사랑한다. 나의 포근함과 따듯함이 보이는 곳. 질척한 바깥과는 다르게 나의 연인이 없어도, 마음마저 따듯해지는 공간.
  그래서 나는 이 시간, 이 공간을 사랑했다.
  이런 날에는 투명하고도 따듯한 재즈를 틀어 놓고 노란 불빛에 기대어 창밖을 본다. 저 멀리서 빨간색 우산이 이곳을 향해 걸어온다. 우산이 여자를 다 감싸주지 못하는 듯 여자의 머리끝은 조금은 젖어있었고, 차가운 바람에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딸랑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수건을 건네주었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수건을 받아 머리에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이럴땐, 가끔씩 저처럼 이런 곳에서 방황하고 있을지 모르는, 가 생각이 나네요.”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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