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람

나열, 감정의 나열

2024. 3. 24. 21:56

어느 금요일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을 먹다가 자신은 건강한 사람이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건강한 사람. 그래 건강하면 좋지. 건강이 제일이니까. ,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하지만 막상 찾으려면 찾기 힘든,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는 거니까..

나는 그렇게 이해하곤, 아, 건강한 사람도 이상형이 될 수 있구나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이야기들이 이전까지 만났던 사람들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지칭했을 때, 나는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건강함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계속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건강함은 때 묻지 않음이 보여야 했고, 화가 많이 없으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아니 심하더라도 밑바닥까지 뚫지 않는, 그런 맑은 같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들려왔다.

건강함? 그런 사람이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있을까? 나는 지난 날 연인에 대한 스토리를 듣고야 입을 열었다.

"그게 건강한 사람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건강함이랑은 조금 다른거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정신적인 건강함이라는 것은, 많이 다치고, 아파보고, 힘들었던 사람들한테 생기는 거였어요. 마음이 많이 깎여내려 가고, 피가 나고, 쥐여 짜여본 사람이 다시 자신을 찾을 때, 다시 삶을 회복을 했을 때.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 때, 그런 사람들이 건강해 보이더라구요. 지금까지 당신이 만났던 이상한 사람들은 예전의 아픔에서 회복을 못하고 그 시간 속에서 사는 것뿐일 수도있어요. 아직 이겨내는 중일수도 있고, 이겨내지 못한 걸수도 있어요. 그건 아무도 모르죠. 절대 티 없이맑고 깨끗한, 그런 순수한 사람들이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어요. 아직 다쳐본적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회복하는지, 회복은 할 수 있는지 아직 우린 모르니까. 진짜 건강함이라는 것은 다쳤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짧은, 그리고 누구한테나 들을수 있는 말을 정말로 가슴에 품고 어려울때마다 꺼내 자신을 위로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카뮈는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삶은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있다고. 그리고 부조리함을 깨닫는 순간, 나는 살아야할 것인가, 살지 말아야할 것인가의 의문을 품게 된다고. 그것은 모든 철학 중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이며,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그러면서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이야기했다. 거기서 카뮈가 나에게 이해시킨 삶이란, 끝없이 돌을 정상까지 가지고 올라가야하고, 올라갔다 싶으면, 무언가 거대한 없는 힘에 의해 돌이 다시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지는, 그리고 다시 내려가 떨어진 돌을 주어 또 다시 정상까지 이고 올라가는... 그런 행위들의 반복이었다.

계속 반복되는 힘듦과 , 하지만 끝은 진짜로 끝이 아닌 다시 새로운 시작.

힘든 (혹은 거대한 프로젝트) 끝났다 싶으면, 아니면 겨우겨우 어떤 일을 해냈다 싶으면, 다시 처음부터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는 그런 . 그런 일들의 무한한 반복.

카뮈가 바라본 삶의 그림은 그랬다. 그래서 행위에 부조리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그런 부조리함을 느꼈을 , 세상이 그런 식으로 밖에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 우리는 삶을 되돌아본다고 했다. 이어 나갈지, 말지. 하지만 카뮈는 그러면서 이어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한 부조리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같은 행위를 즐겨야만이 반복적인 삶과 그런 운명에 저항을 하고, 저항은 굴레를 이기는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에 언뜻 공감을 하면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부조리함을 안고 산다고 하기에는 삶이 너무나도 팍팍하고 암울해 보이니까..

내가 끝없이 무거운 돌덩이같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시 어딘가에서 생겨나 돌덩이를 정상까지 돌려놓아야하고, 그러한 행위를 계속 반복하며 그것에 인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산다면, 얼마나 사는 내내 삶이 지옥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을까.

 

나는 돌덩이를 안고 산으로 가고 싶지 않다. 그걸 힘들게 들고 올라가고 싶지도 않다.

 

물론 삶은 항상 편한 길만 있지 않아서 들고 올라가야만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적어도 이 돌덩이들을 여기저기로 굴리며 가끔씩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사람들과 만나서 티타임도 갖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시시포스는 형벌로써 한 장소에 갇혀 돌을 정상까지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지만, 우리는 자유로우니까. 그에게는 길이 하나였지만, 우리의 눈앞에는 수많은 길들이 펼쳐져 있으니까.

비록 어둠과 안개가 있는, 우리가 모르는 길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언제든 돌덩이를 내려놓고, 밀지 않고 훌훌 날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카뮈가 생각한 시시포스의 행위를 공감할 수는 있어도, 삶은 조금 더 다채로운 선택지와 아름다움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론 카뮈도 행복한 시시포스가 되자고 말했지만...

 

그렇게 나는 조금더 삶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여기에 있으니까. 우리의 삶은 여기서 살아 숨쉬고 존재하고 있으니까. 조금더, 나를, 삶을, 인생을 보듬아주고 싶었다.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삶을 진정으로 사랑해주지 않을테니까.

 

그런 나의 시시포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친구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친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말한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 건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그동안 너무나도 힘든 연인관계들을 이어갔기에, 그냥 말해본 투정일지도 모른다.

 

나도 조용히 술잔을 바라보다가 건강함이라는 기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그럼 우리는 모두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인가, 아픈 사람들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웃고, 고민하고, 도망도 갔다가, 맞서기도 하고. 넘어졌다가, 누워있다가, 일어섰다가, 걷기도하고. 다치면 앓고, 붕대도 감고. 그러면서 그냥 살아가는 . 없이 그냥 살아가는거. 그냥, 그게 건강한게 아닐까.'하는 내적 의견이 나왔다.

 

그래, 그래서 다시 건강함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서로 머쓱해졌다. 그래, 그냥 세상을 있는데로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게 아닐까.

내가 괜히 건강함의 기준을 높게 말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자들 뿐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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