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좋은 점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서로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다는 점이다 .
누군가의 객관적인 포장이 아닌 나의 주관으로써 그려내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에 묘사된 사람은 나의 입맛대로 각색이 된다.
'너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야. 하지만 나에겐 소중하고, 어떤 감정을 전해준 사람이지. 그 사람은 말야,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 그리고 이렇게 행동했지. 나는 거기서 무엇을 느꼈고, 어떤 감정을 공유했어.'
그렇게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너는 정말로 신나 보였다. 그리고 너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들을 너만의 필터를 씌워 너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 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니까, 만날일도 없고, 그러니까 너는 더욱더 솔직해졌다. 마치 여기가 대나무 숲인마냥. 그리고 그 모르는 묘사하는 너의 모습에 나는 수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을 표현하는 너만의 표현 방식, 언어, 감정, 분위기. 그리고 너의 눈빛에 담긴 수 많은 감정들은 한편의 기나긴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오랜만에 이렇게 서로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생기가 넘치며, 온몸을 통해 묘사되는 상대방의 모습은 나로써 기나긴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너의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을 아는, 그 이야기들을 아는 친한 누군가에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너는 내게 내뱉는다. 왜냐면, 나는 그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도 나를 알지 못할테니까. 아니, 알더라도 지금 묘사되는 그 사람과 실제 그 사람사이에 나는 아무런 연결성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이야기 속의 그 사람은 너의 모든 감각으로 표현하는 그 순간의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너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너가 남긴 단서들을 따라 너를 보듬어준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해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너의 주관적인 내용에 맞춰 나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조금더 사회적인, 아니면 고전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어떤 소설의 등장인물이 했을 법한 선택지를 제시해줄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너고, 너의 삶은 너의 소유니까. 너가 느끼는 데로 흘러가.'
그러자 너는 깊은 생각 속에 빠졌다.
그리고는 오랜 침묵 끝에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나도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너가 모르는 내가 무언가를 느꼈던 사람.
너는 내가 그랬듯이 나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듣는다. 그리고 아무 편견없이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만약, 서로 이야기하는 대상을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 이렇게 이야기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필터위에 너의 필터가 또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하지 않듯, 나에게 대하는 태도와 너에게 대하는 태도가 다를 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아마 나의 이야기를 또 다른 필터를 끼고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가끔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에게 그 친구가 모를 법한 제 3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너가 그렇듯, 나도 온몸으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한다. 씁쓸한 나의 시선, 언어, 말투. 그 날이 되기까지의 작은 단계들. 나만의 고민들.
그러면 너는 내가 그랬듯, 나의 주관적인 시선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는다. 아마 너의 머릿속에는 나와 똑같이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가 되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마도 나겠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 위로를 받는다. 지독하기 이를 때 없는 주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서로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상처를 치유받는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우리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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