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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만드는이야기

화장실 학교로 들어간 소녀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바라보다가 무릎에서 피어나는 빨간 꽃이 마음에 걸렸다. ‘치마에 묻으면 어떻게 하지?’종아리를 타고 흐르는 그 가느다란 줄기에 소녀는 일층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은 아무도 학교에 도착하지 않은 모양인지, 소녀가 바라보는 곳마다, 깊은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소녀는 가는 길마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며, 그 길을 밝게 비추었다.“후…….”다리를 의식한 탓일까, 조금씩 화장실을 향해 갈때마다, 쓰라림은 더해갔..
등굣길 자꾸만 뒤통수에 어떤 시선이 꽂히는 것만 같다. 뒤를 돌아 봐서는 안될 것 같은데도, 자꾸만 깨름찍한 호기심이 소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짝하지만 소녀는 스스로 뺨을 쳤다. 그 무언가가 있더라고 하더라도, 아마 소녀의 존재감을 눈치 채진 못했을 것이다. 모두 다 똑같은 옷들을 입고 한곳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나 그 무언가가 소녀의 존재감을 눈치 챘더라도 그 무언가에 확신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 직접 정면에서 보진 못했을 ..
풋풋한 꼬맹이 “아직도 꼬맹이지 뭐.”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에, 꼬맹이는 잔뜩 열이 올랐다.“우와, 우와, 우와!!!!”“그나저나, 아직도 0교시 하니? 예전에 뉴스보니까 없어진다고 하던데..”“몰라요, 그건 어느나라 이야기인지. 하여튼 아저씨, 너무 저를 어리게 보시는거 아니에요? 하아- 어제 괜히 이야기했어... 어제 이야기 때문에 그런거죠? 그쵸?”굳이 어제 추억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저 풋풋한 꼬맹이의 모습에 입가에 ..
[하이퍼텍스트 소설]가을 바람 속 선택문항 그저 기분 좋은 하루였을 뿐인데, 그것을 체 음미하기도 전에 하루는 지나가버린다. 기분 좋게 씻고 앉은 침대위로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오늘의 행복한기분이 차가움 속에 녹아 아련아련하게 마음속을 따듯하게 만든다. 그저 하루의 행복한 시간을 잠시 가졌을 뿐인데, 오늘의 24시간 중에 고작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을 터인데, 너무나도 하루가 기분 좋아지고 오늘 하루를 하루답게 산 느낌이다.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오늘의 행복함이 ..
[하이퍼텍스트 소설]스물 다섯. “그럼 그냥 스물 다섯해요.”“아, 그럼 오빠도 서른 다섯인가요?”“아니요, 그러기엔 제가 너무 늙었어요.”“히히, 그럼 스물 다섯하죠!”그녀의 붙임성은 정말로 좋았다. 같이 진료실에 들어간 순간에도, 연락처를 서로 교환한 순간에도, 마치 그녀는 가해자의 입장이 아닌 편한 친구사이처럼 나를 대해주었다. 물론 해어지기 전, 정중한 사과 전까지 그녀는 사고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했으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
메론빵               오늘도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하는 걸까. 오늘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 걸까.그저 하루를 멍하니 일을 하다가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가게 주변을 둘러본다. 어쩌다 테이블을 치우다가 울리는 방울소리는, 그저 가슴을 뜨겁게만 만든다. 그일까. 이내 들려온 다른 색..
소녀의 아이디어. “아저씨, 오늘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무슨 일인데?”그가 미소를 띄우며 나를 쳐다보았다."메론빵이요.”“메론빵?”그가 이상한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오늘 그냥, 날이 춥고 그래서, 주방장 아저씨한테 말했거든요. 오늘 다들 코가 빨개져서 올지도 모르니까, 카페에 따듯한 음식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런데 아저씨가 그럼 어떤 것이 좋겠니 해서 스프, 갓구운 빵이랑……, 음…… 생각하다가 있죠.”“메론빵 이야기를 했구나?”그가 빙그레 ..
김나래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지워버리고는 축축한 옷아래로 느껴지는 몸을 손가락으로 조금씩 더듬고 있었다. 약간 해진 소매, 하지만 언제나 잘 다려져 있는 나의 양복의 빳빳한 선이 손가락 사이로 느껴졌다. 약간 물에 젖은 바지는 찝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추운날 따듯한 자동차 시트의 열기를 느끼니, 몸이 편하게 풀어졌다.“저기요. 좀만 기다리세요. 거의 다 와가요. 죄송해요.”아까와는 다르게 침착해진 목소리였다. 아니, 그녀의 분위기가 침착해졌다고 해..
소화전의 빨간 버튼 가끔씩 소화전의 빨간색 버튼을 너무나도 누르고 싶어,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지독한 심해의 끝을 느끼는 것일까, 지독한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일까. 아무도 나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준 적이 없었고, 어느 교과서나, 어느 책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나 기준선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훗날 생각해보면, 그건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교과서나 어떠한 조언없이 나 스스로 책임..
아침 커피 매마른 집 안 곳곳으로 따듯한 커피향이 흘러 내렸다. 따듯한 온기와 함께 전해지는 감미로운 향기. 그가 그 향기를 한 모금 입에 물어 온기를 골고루 빼앗는다. 아직 완전히 깨지 못한 무거운 몸 사이로, 아직은 완전히 깨지 못한 감각사이로 커피향이 돌고 돈다. 부드럽게 몸 안을 감돌 때면, 눈을 살짝 감는다. 그리고는 다시 뭉툭한 감각사이로 생각의 끈조차 놓아버린다.갈색의 초원위에 아이가 누워있었다. 따스한 세계. 아이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지만..
고독(苦毒)                                           &..
소년과 선생 쌤, 이 일을 시작하신지 한 2년정도 됐죠?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잘 못 가르쳤나?아뇨. 쌤, 풋풋해서요. 쌤 수업하실 때 막 자랑하시고 그러잖아요. ‘내 학생들은 말야~’ 이러면서 ‘다들 얼마나 내 강의에 만족스러워 했는지 알아?’ 이러구요. 쌤, 근데 그거 되게 귀여워 보이는 거 알아요?뭐?!... 근데 틀렸다. 사실 3년째지롱. 히히에... 그게 그거죠, 뭐... 쌤, 그럼 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3년째면... 우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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