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Panic's Torso

비 오는 날의 운전

by RomanticPanic

 

 

나는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짙은 여름의 어느 날, 안과 밖의 괴리된 습도와 온도. 그리고 소리.

 

  항상 차안의 공기는 서늘하고도 조용했다. 톡톡 창문을 두들기는 빗방울들, 작게 들려오는 라디오, 그리고 조용한 배기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빗방울들은 어느새 톡 소리와 함께 깨지고는 다시금 아래로 흘러내린다..

 

  아마, 내가 이러한 순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대한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이면, 어린 자식이 비를 맞고 흠뻑 젖어 집에 들어오지는 않을까, 우산은 챙겼을까, 바람에 우산이 날라가진 않을까, 어두운 하늘에서 차들이, 어린 자식이, 서로를 못보면 어떡하나. 그러한 걱정에 어김없이 차안에서 전화를 하시던 아버지. 나갈때면 어디든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던 아버지.

 

  그때마다, 나는 비를 핑계삼아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행운의 티켓을 얻은 것만 같았다. 멀리서 보이는 차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전혀 다른 세상. 밖은 꿉꿉하고 덥고, 짜증이 나는 곳이었지만, 안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바로 그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었다. 고민도, 꿉꿉함도, 더위도, 이야기도. 비 오는 날 차에만 들어서면 모든 이야기들이 조금씩 긍정적인 이야기들로 변했고,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에서 이해하도록 노력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느덧 커버린 내가, 그래도 운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한여름에 비가 오기 시작할때면, 안과 밖이 분리될때면, 빗소리가 토닥토닥 들려올때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너무나도 행복한 기분이고 행복한 순간들이 나를 겹쳐온다. 그래서 조금더 고요하게, 이 순간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천천히 길을 몬다.

 

  조용한 라디오 소리. 빗방울, 시원하고도 적당한 습도.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차에서 해실해실거리며 그때의 기분을 간직한다.

 

 

  …그렇다고 폭우때 운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로그의 정보

RomanticPanic's Torso

RomanticPanic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