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Panic's Torso

완벽한 순간

by RomanticPanic

 

  하늘은 파랬고, 우리는 초록색에 뒤덮혀 웃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때쯤, 여름의 하늘의 색이 짙어질 때쯤, 우리는 푸르른 들판을 거닐었다.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손가락 사이를 휘감았고,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초록빛 새싹들이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누군가가 등을 떠민듯이 바람이 세게 불때도 있었고, 그렇게 바람에 떠밀려 앞으로 나아가니, 우리는 마치 이 풍경속에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우리는 엉거주춤하게 서있다가 서로를 보고 웃었고, 푸르름에 떠밀려 한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그 간지러움에 못 이겨, 까르르 웃곤 했다. 지독했던 여름은 끝났고, 지독하게 추울 겨울이 오기전, 우리는 이 순간들을 사랑했다. 시원한 바람에, 푸르른 하늘에, 간지러운 초록에. 우리는 꿈을 꾼 듯이 웃었고, 하늘을 향해 달려갔다. 이 넓고 푸르른 들판 위에, 어떠한 짐도 짊어지지 않은 체, 우리는 현재를 살았고, 현재에 웃었다.

 

  늦여름, 초가을, 그 어느 사이. 우리는 이 날 같이 웃었다.

 

  지난한 여름과 고단했던 봄을 보내고, 이제 낙엽이 질 무렵에 다다른 우리. 그렇게 너와 나는 긴 들판을 아이처럼 뛰어갔다. 그렇게 세상에서 조금 멀어져서 였을까,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을 가서 였을까, 너는 다시 아이가 된 거 같았고, 나도 너와 같았다.

 

  우리는 아직도 애 같은데, 누가 그렇게 우리를 어른으로 보았을까.

 

  우리는 바보같이 웃으며 강아지풀 하나를 주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미친 사람들처럼 보이겠지? 너는 나에게 작은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강아지풀은 어느새, 토끼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 토끼는 내 손가락 위에서 재밌게 놀고 있었다.

 

  우리는 고요한 잔디위에 누워, 조금씩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행복.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나의 삶.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사람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고, 시선에 치이며 살았을까.

 

  모든 답을 인터넷이나, 사람이나, Ai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모든 시선들이 멈춘 그곳에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 넓은 들판에서, 이 넓은 세상에서, 이 넓은 우주에서 정말 먼지 한톨보다도 작디 작았던 우리. 우리는 그토록이나 이 작은 세상에서 작은 시선들에 쌓여 살아야 했을까. 시간의 길, 물질의 길, 시선의 길. 우리는 그곳에서 빗겨나가 우리 스스로 완성되기를 소망했다. 완성이라는 것은 부단하게도 어려웠지만 한번쯤은, 아니 한번뿐이니까 우리는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물론 완성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크기나 모양새나 품고있는 생각이 그리 거창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오늘 웃으며 생각한다.

 

  지금이 완성은 아닐지는 몰라도, 완벽에 가까운, 아니 완벽한 순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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