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Panic's Torso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종말

by RomanticPanic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종말.

 

  그 순간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허망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사랑했던 세계가 갑자기 종언을 고하고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게 되는 순간. 내 사랑은 갈길을 잃고, 나의 심장은 도려낸 듯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내 일부는 그렇게 떨어져 나가버렸고, 나는 허망하게 그 빈곳을 매만진다. 그렇게 내 세계의 일부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그 부재에 슬피 울었다.

 

  그 고통에 몸부림치다보면, 영원이라는 개념을 더이상 함부로 입에 올릴 수가 없게 되었고, 영원이라는 것을 입에 올릴 때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그 개념을 온세상이 집어 삼킨 듯, 나의 세계를 내어준다는 의미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런 영원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에, 나는 그저 그 개념의 부재에 대해서 순응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영원히 존재할 것 같았던, 이 종말의 과정을 너무나도 서럽게,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드리는 척 하며 산다.

 

  가장 처음으로 기억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의 종말은 무엇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나는 눈사람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눈이 펑펑 내리던 하루. 그날따라 아버지는 이제는 눈도 맞으면서 노는게 좋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작은 눈송이를 던지고, 굴리고 굴려 작은 눈사람 하나를 만들었고, 그와 함께 이야기하며 놀며, 춥지말라고 목도리까지 둘러주었더랬다. 그렇게 우리는 내일 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따듯해진 세계는 그것들의 흔적조차 사라지게 만들었고, 아기는 그렇게 다음날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한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사랑한 세계가 하루아침에 종말을 맞이한 것을 겪어야했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예삐는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고, 나를 사랑해주던 그 손길은 갑자기 생긴 물리적 거리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가장 아끼던 옷들은 어느날 커져버린 몸에 맞지 않게 되어버렸고, 내 에너지를 모두 바치며 만들었던 고무비행기도, 길을 가다 주웠던 전설의 무기처럼 느껴졌던 그 나무막대기도, 한푼 두푼 모아가며 만들었던 나의 로봇장난감도, 시간이 흘러, 혹은 외부의 사건으로 그들은 하루아침에 종말을 고하기도 했다.

 

  다행인건 조금 느린 형태의 종언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멀어지는 친구들과 새롭게 나타난 친구들. 끝이 정해져 있었던 수능과 학창시절. 대학교에 들어가서 맡게 된 프로젝트들. 어느새 우리는 자신이 좋아했던, 좋아하게 된 세계와 멀어지는 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익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그 종언에 대해서 무덤덤해질때쯤,

 

  세상은 언제나 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더 큰 종말을 고하기도 한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의 종말.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버렸다. 한순간에, 아무 낌새도 없이. 어제까지 사랑하던 나의 세계가 오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끝에 나는 여운조차 허락받지 못한체로, 나는 종언을 들었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종말들 사이로 나는 정말로 괜찮을 줄 알았다. 세상엔 언제나 끝이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종언들은, 크건 작건 나도 모르게 나의 심장을 후벼파고 있었다. 그저 나의 머리가 감각을 차단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너무나 큰 고통은 그동안의 고통의 단절을 다시 되살리기라도 한 듯, 겪었어야 할 모든 고통을 끌어 모은 것만 같았다.

 

  우습게도, 사실 이런 종말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난 그 시작할 자신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계속 나의 몸에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을 뚫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 종언을 들은 순간부터도 나는 미친상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슬픔을 먹고 또 삼킬 수 밖에 없다. 더이상 미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됐다. 나는 무색무취로 존재하고 싶었다. 감정들을 가지고 이 종말들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서 젊은 날들의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추억은 항상 미화되고 아련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조차 종언을 고한다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렇게 나라는 사람의 연속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나로써 존재하는 것일 수 있을까?

 

  이 종말은 나 자신에게 고하는 종말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사라지고,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오늘은 더이상 떠오르지가 않고, 나 자신을 잃고 나의 이름을 잃고 그저 나의 껍데기만이 존재하는 세계.

 

  내가 사랑했던 것들도 나에게 종말을 느낄까

 

  나는 나의 종말이 당신의 종말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종말을 맞이한다. 연속성이 사라진 나라는 존재를 당신이 나라고 생각해주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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