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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감정의 나열

신묘년에 꾼 토끼꿈.

RomanticPanic 2017.10.19 06:16

엊그제 참으로 이상한 꿈을 꿨어. 두 꿈이 이어진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한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꿈이었지. 일단 꿈이 두개라고 생각하고 말해볼께. 첫번째 꿈은 내가 토끼를 기르는 꿈이었어. 아주 작고 귀여운 토끼. 나는 그 토끼를 엄청 좋아했지. 매일같이 밥을 주고 쓰다듬으며 길렀으니까말야. 그러던 도중에 갑자기 지하철을 타고 가는 일이 발생했어. 어쩐지 그날따라 토끼가 내손에 없더라?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었지.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지하철이 멈춘거야.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어. 아니, 내 느낌이었지. 무언가가 지하철에 갈린거야. 그래서 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 
웅성웅성. 
무언가가 분명하게 지하철에 갈려 죽은거야. 나는 멀리서 그 사람들이 몰려든 것을 보고 있었어. 그러다가 그 사람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지. 그리고 그 순간 느낌이 왔어. '나의 토끼가, 나의 사랑스러운 갈색토끼가 갈렸구나..' 나는 멍하게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쪽으로 걸어갔지. 하지만 그곳에 다다르기전에 내발이 무언가 작은 돌멩이 비스무리한 것을 밟았어. 그때 직감적으로 느꼈지.
'이건 내 토끼의 머리네?'

그리고 그 꿈은 끝이 났어. 




그리고 시작된 그 다음꿈은 아무도 나가는 길을 모르는 빌딩에 나와 내 동료들이 있는거야. 이 미로같은 빌딩 꼭대기를 올라간 사람은 이곳을 나갈수 있다는 이상한 확신이 드는 이상한 꿈이었지. 그것도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하지만 다음층을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미로같아서 아무도 길을 찾지 못하는거야. 하지만 여기서 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지.
꼬마아이.
우리 일행이 아닌, 이곳에 살고 있었던 아이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머리는 그 설명을 듣지 않고도 이미 알고 있었더라구.
여튼 꼬마아이는 나를 무척 따랐어. 그 꼬마아이는 나 아니면 안된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었지. 그리고 왠지 나는 이 꼬마아이를 소중히 대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묘하게 우리 둘 사이에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지. 여튼 그래서 나는 아이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을 인도했어. 이상한 곳에서 길이 나오고, 복잡하던 곳이 단순해지고. 우리는 점점 한층, 한층을 올라 위로 올라 갈 수 있게 되었어. 그러던 도중에 다른 일행을 만났지. 그런데 그들은 매우 호전적인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우리의 행동을 말리고, 다음 길을 물으며, 안가르쳐주면 죽일듯이 대했지. 나는 직감적으로 우리가 더 먼저 올라가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 그들이 우리에게 해꼬지를 할 것을 알고 있었지. 그래서 도망쳤어. 그리고 그들을 피해 다음층으로 갔지.
파란하늘이 거대한 창문을 통해서 보였던 걸로 기억해. 그래서 우린 거의 마지막에 다왔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꼬마아이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어느곳으로 향했지. 그 아이는 그곳에 다음층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어. 그래서 문을 열었지. 그 안에는 와인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는 하나의 방이 존재하고 있었어. 아주 어두운 곳이었지.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건 어두운 와인빛 뿐만이 아니었어.
찢어진 토끼그림.
찢어진 토끼의 부위에는 내장그림이 그려져 있었어. 마치 따로 분리된 발과 그 뼈와 힘줄을 그려 오려놓은 것만 같았지. 그런 그림들이 방 구석구석에 토끼가 먹이를 착각하고 폭탄이라도 먹은 듯이 퍼져서 있더라구. 그리고 깨어났지.


그런데 깨어서 처음 든 생각이 그 빌딩의 분위기가 내가 옛날에 자주 꿨던 꿈에서 나온 빌딩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다는 거야. 그리고 잠시 후에 든 두번째 생각은 그 길을 안내하던 꼬마아이의 분위기. 그 느낌은 첫번째 꿈에서 내가 애정을 쏟아 기른 그 토끼와 똑같다는 거였지.
어때? 이 꿈이 무엇을 말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그냥 개꿈일까?

 

 

 

 

 

201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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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나는 푸른 바다가 보이고 검은 하늘이 푸르게 보이는 신비한 곳에서 왔어. 이곳은 민들레 내음이 마치 달콤한 꿀의 향기로 느껴지는 듯한 곳이었고, 붉은 노을은 순간 매력적인 세상으로 만들어주는 전등역할을 하는 곳이었지.
때때로 추위와 숨막히는 더위에 이곳을 잠시 떠날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때마다 찾아오는 따듯한 사람의 향기, 고된 노동 뒤에 오는 개운한 기분이 나를 붙잡았어.
하지만 너는 아닌 것 같아. 너는 이 곳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걸?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나는 예전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그리고 대답도 듣고 싶었지. 너는 이 세상을 나와는 다르게 느끼는 것 같아. 뭐 당연히 그렇겠지. 너와 나는 태어난 곳이 다르고 살아온 곳도 다르니까. 나는 이 곳에서 새롭게 느낀 것들이 많아. 이곳엔 많은 것들이 존재했고, 살아있었고, 서로 느끼는 것도 달랐어.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세상과는 무척이나 달랐지. 아마 우리별에서만 내가 지내서 그랬는지도 몰라.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별에서 느끼는 것들이 세상의 있는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야. 뭐, 그동안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알게 되었어. 살짝만 나와도 이런 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야.
그래, 그래서 물을께.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어느 별에서 왔기에 그러는 거야.
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어. 그렇지? 그런데 정말 태연하게 가더라구. 뭐, 너의 냄새도 한 몫을 했겠지만 말야. 하지만 우리별에서는 그건 조금 심한 행동이야. 그런 시선엔 아무도 견딜 수가 없다고. 아니 견뎠던 것은 특별한 종이었지. 아니면 특별한 것이 허락된 종이거나.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니, 혹시 모르지 넌 특별한 종이었을지도. 하지만 내 눈엔 너는 똑같았어. 나와 똑같았지. 전혀 다른 별에서 태어난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알아. 너도 두려움에 떨었다는 거. 하지만 너는 너무 태연했어. 너는 느끼지 못했어? 그 참기 힘든 냄새와 올라오는 구역질을.
뭐, 아니라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정말 궁금해. 너가 살아온 별에 대해서.
왜냐고? 알잖아, 왜 그러는지. 너는 그날 흥분하지도 않았어. 흥분하지도 않은 체로 그저 묵묵히 그것을 들고 새로운 별의 인종에게 선물했지. 조금 방식이 과격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너의 별에서 주는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 통용될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게 있어. 이 전 우주를 통틀어서 말야. 아닌가, 이 별에만 존재하는 거였나... 아 몰라 하여튼 이 별에는 그것이 확실하게 있었어. 그러니까 너는 잘 살펴봤어야 했다구. 너의 방식이 혹시 그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야.
알잖아 그 이 별에 있는 개미라는 녀석에게 물을 선물한다고 물 한바가지를 부어버리면 안되는 것처럼. 그래, 너도 그런거 같아. 넌 조금 심했다고.
응? 나? 나였다면 그 선물의 방식이 조금 달랐지 않았을까. 그래, 너는 조금 심했어. 그래서 나는 궁금증이 조금 들기 시작했지. 알잖아 가끔씩 선물을 줄때 장난치는 녀석이 존재하는 거. 나는 네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것도 도를 넘어선 장난을 치는 녀석이라고. 그래서 물어보는거야. 너는 어디에서 온 거야? 너의 쪽은 다 그래? 아니면 설마 진심으로 그런거야? 아아, 알았어. 넌 정말 녀석이 싫었던 거구나, 그래서 표현이 그렇게 되었던거고. 맞지? 아니야? 그러면 장난은 조금 심했는데... 잘 생각해봐. 이곳에 사는 녀석의 정보를 처리하던 곳이 없어져 버렸다고. 너가 뭉게버린거야. 그건 매우 심한 장난이지. 아직 이 별에 사는 녀석들에게 그게 복구가 되는 매체인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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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RomanticPanic 2017.10.19 06:14

 

 

청아한 가을하늘에
타는 듯한 차가움이 찾아올 때면
단풍은 차갑게 녹아버린다.

 

 

 

20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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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아가씨

RomanticPanic 2017.10.19 06:13

나는 요새 버스정류장에서 한 어여쁜 아가씨를 가끔씩 보게 되었다.
그녀는 어쩔 때는 서서, 어쩔 때는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그녀가 기다리는 버스는 항상 내가 타는 버스보다도 늦게 왔다. 가끔씩 이곳에서 계속 마주치다보니, 처음엔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는 나보다 먼저 버스를 타지 않았고, 내 버스는 언제나 그녀의 버스보다 일찍 이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래서인지 내 머릿속에는 언제부터인가 그녀를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던 봄바람이 겨울의 추위를 녹이던 봄과 겨울의 미묘한 경계의 날. 언제나처럼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내 앞에 또 그녀가 나타났다. 오늘도 그 어여쁜 아가씨는 어느 때와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서서 기다리다가, 다시 또 앉았다가, 다시 버스를 바라보는 듯 하더니만 어느새 고개를 돌려 먼 곳을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어여쁜 아가씨는 몇 번 버스를 타기에 이렇게 매일 기다리고 있냐고…….
겨울바람이 약해져서인지, 아니면 봄바람이 살랑였는지, 나는 그날. 그녀가 버스를 타는 것을 보기로 했다. 어차피 버스는 대부분 30분 안에 오니까. 엄청 늦어봐야 30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그러기를 30분. 그녀가 탈 버스는 오지 않았다. 버스가 아니라 차를 기다리는 건가……? 나는 약간 의아해하며 계속 그녀가 탈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1시간. 그녀가 탈 버스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오는 버스 번호를 다 머릿속에 떠올려보았지만, 그 버스들은 이미 이곳을 한번 이상 왔다 간 버스들이었다.
또 다른 버스가 있는 걸까. 새로운 노선이 추가 된걸까.
나는 한시간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혹시 차가 올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다시 한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기다리는 그 무언가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아직 봄이 완벽하게 오질 않았는지, 나는 불어오는 추위에 손을 싹싹 비비고는 킁하고 밀려오는 콧물을 다시 콧속 안에 집어넣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기, 킁. 아까부터 뭘 기다리세요?”
약간은 주제넘은 질문일지도 몰랐지만, 그녀는 내 질문에 살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연을 기다려요.”
무척이나 청아한 목소리였다.
“인연이요?”
“네. 그 있잖아요, 소설이나 영화에나 나오는거.”
그녀는 인연을 기다린다고 했다.
인연.
그녀는 너무나도 영화와 소설을 좋아했다. 그래서 영화와 소설들을 매일같이 끼고 살며, 매일을 보냈었다. 언제나 그녀의 가방에는 소설책 두세권이 들어 있었으며, 그녀는 틈만 나면 소설책을 꺼네, 그 세계에 푹 빠지곤 했었다. 집에서는 언제나 밤중에 영화를 보며 울먹이거나, 웃거나, 무서워 벌벌 떨기도 했으며, 밖에서는 친구들과 영화이야기나 소설의 내용을 주제를 안주삼아 분위기에 취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덧 모든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졌을 때. 어떤 이야기를 읽고 보아도 무언가 텅 빈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스스로 공황상태에 빠져,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아무 것도 없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꿈, 미래, 행복... 그 무엇 하나 없었다고 했다. 아니, 남아있는 것은 갈망. 소설속이나 영화 속의 세계에 대한 갈망만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매우 침울했다. 소설속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는 어차피 만들어진 이야기일뿐. 그녀 앞에서는 그 어떤 소설속의 이야기나 영화 속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슬프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니, 슬픈 것은 잠시. 일반인의 대열에서 보통사람처럼 살았다고 했다. 어차피 자신은 어느 소설속의 주인공도 아니기에. 그저 포기를 한 체로, 일반인들과 똑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단 한번뿐인 삶이. 그렇게 푸르죽죽하게 없어지는 것은 너무도 싫었다. 보통사람들처럼 살기 싫었다. 자신도 한번쯤은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발로 뛰었다.
언제나 가만히 자신의 삶을 받아드리기는 너무도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이 날때마다, 바깥을 돌아다니며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여러사람들과 친해지고 여러사람들과 웃는 일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느덧 그녀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흥미가 떨어지고, 오히려 쓸쓸함만을 느끼며 그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어디에도 그 소설 속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들이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들과 멀어져 버렸다. 아주 짧은 시간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질렸고,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그녀는 절망했다.
‘나는 소설속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은 될 수 없는걸까.’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울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고 삼일째 보내는 순간.
엄청난 허무감이 밀려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뒤 이어서 쓸모없는 삶을 보냈다는 자괴감까지.
하지만 그녀는 무너질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나약한 자신이 미웠다. 아니, 싫었다. 그녀는 이렇게 허무한 아무 것도 없는 자신과 그리고 그 삶에 증오를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까지 증오를 할 수만은 없었다.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빠져살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나 자신의 삶을 허무하게 놔둘 순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현실과 타협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그마한 포기를 배웠다. 그래서 그녀는 조그맣게 포기했다. 아주 조그맣게.
포기는 현실과의 타협의 끈을 만들어주었다.
일반인이 뭐 어떠랴, 그곳에서 행복만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닌가 하고.
그곳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만족을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웃으며 따듯하게 살아갈수 있다면. 그것이 내 작은 삶의 행복이자, 정말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는 기분으로 마지막으로 이곳을 왔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 그런지. 훌훌 털어버린 마음이 아직 남아있었는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만난 것이다.
그리고 나와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나에게 그녀가 바랬던 그 많은 이상들과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얻게 된 작은 여유와 행복을 이야기 한 것이다.
어느새 카페에 앉아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포기하지마세요. 단지 그것을 약간 미뤄두세요. 언젠가는 당신에게도, 당신을 위한, 당신의 봄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를 기약하고 잠시만, 아주 잠시만 미뤄두세요. 그리고 당신의 봄날에. 당신이 바라던 행복을 피우는게 어때요?”
그녀는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막았다. 하지만 눈물은 그녀의 손을 타고 팔목을 지나 팔꿈치로 향해 흘러내렸다.
“아무도, 아무도 그 꿈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아무도, 아무도 나에게 그 꿈이 올꺼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틀리네요. 틀려요..”
그녀는 울고 있었다. 고요하고도 조용하게. 하지만 그 슬픔은 마주보고 있는 나를 지나 이 공간 전체에 퍼져버릴 것만 같이 강했다.
“아뇨. 다른거죠. 누구나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나,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다 똑같은 걸요. 영화 속 주인공이나, 소설 속 주인공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보면 지루한 나날들도 있었고,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을꺼에요. 하지만 언제나 이야기는 단편적인 것들만을 보여주죠. 그것도 가장 재밌거나, 가장 흥미를 끄는……. 아마도 당신에게 올 봄날도 훗날 떠올린다면 아마도 그들의 단편적인 이야기처럼 멋지고, 아름답고, 달콤하지 않을까요? 저는 다르게 생각한거에요.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이고, 자신이 조연이고, 자신이 엑스트라로 있는 이 세상 사는 우리에 대해서 말이죠.”
그녀는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내 이야기를 꼭꼭 씹어 자신의 가슴에 소화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따듯하게 그녀를 밝혔고,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아 그것을 느꼈다.
“고마워요……. 아니, 고맙습니다. 나의 삶에 나의 행복에 당신은 커다란 도움을 주었어요. 그리고 알았어요. 나는 그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 해매고 있었던 걸요. 당신의 말에서 나는 그 이야기들을 사랑했던 이유를 드디어 알았어요.”














이야기를 사랑했던 이유. 그 세계를 좋아한 이유. 그것은 행복을 채우지 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행복을 향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엑시무스 레드에디션)

 

 

 

 

 

201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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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감정의 나열

사라지지 않는 소년

RomanticPanic 2017.10.19 06:12

소년은 심심했다.
자신과 놀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소년은 심심했다.
검은 고양이가 세상을 휘저어 만들어 놓은 저녁에도, 사실은 새들이 날아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푸른 하늘 아래의 오전에도...
소년에게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소년은  외톨이였다.
어느날 소년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랑 놀아줘.'


하지만 세상사람들은 모두 소년의 말에 그냥 씽긋 웃고만 지나가버렸다.

.

..

...

....

.....

......

........

..........

...............

......................

................................

........................................

.....................................................

...............................................................................................................................


소년은 무서웠다. 그들의 웃음이 너무도 무서웠다.
.
.
.
소년은 그들이 소년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자신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아서 투명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점점 투명해졌다고 생각했다. 들리는 것은 소년의 말소리뿐, 그래서
사람들이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냥 지나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울었다.


"으아아아아아앙!!!"

너무도 슬피, 구슬프게 소년은 울었다.


그러나, 이 불행한 소년은 어느덧 자신의 울음소리마저 서서히 옅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소년은 점점 사라지는 걸까? 소년은 겁이 났다. 소년은 뛰어갔다.

'아빠, 아빠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까, 나를 구해줄지도 몰라.'

소년은 곧장 아빠의 서재로 숨어들어갔다.

'아빠는, 나를 구해줄꺼야. 하지만 아빠는 밤늦게 오는걸... 그러면 늦지 않을까? 늦어서 내가 완전하게 투명해지는게 아닐까? 그러다가 목소리까지 모두 투명해지면, 아빠는 나를 찾지 못할꺼야'

소년은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책장 사이에 앉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느리게 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시간은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안돼!"

소년은 집안을 뛰어다녔다. 아무도 없는 집안을 한참이나 뛰어다니고서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서 아빠의 책상에 앉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사라지지 않을까?'

소년은 차근차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덧,

"아!


그래!"

하고 소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림자.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신기하게도 그림자는 투명해지지 않았다. 해가 뜨면 뜰 수록 그림자는 진해졌고, 해가 지면 그림자는 무척이나 진해져 세상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으면 자신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게 되는 법.

소년은 다시 실망했다.

그리고 무서움에 사로 잡혔다.

자신이 점점 닌가 하고...


그러다가 소년은 책이라도 봐야 겠다고 결심을 했다. 아빠가 말하길 세상에 모든 지식은 책안에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소년의 투명화도 책이 고쳐줄 것이다.



소년은 책장을 뒤졌다. 하지만 어려운 글들과 알아 볼 수 없는 꼬부랑 글씨로 가득할뿐, 소년이 투명해지지 않을 방법을 써놓은 책은 한권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서재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가 발견한 하나의 동화책.


제목은 '사라지지 않는 소년'이었다.



사라지지 않는 소년.







소년이 책을 펼친 순간, 책이 말했다.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건 없어. 다만 그게 길게 남느냐, 짧게 남느냐가 그것을 영원처럼 보이게 하거나 아니면 존재 자체마저도 없애 버리는 거지."

"그럼, 세상에 영원한건 없는거야?"

"그래."

책은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소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때로는 영원한게 필요하기도 해."

소년은 책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 우리 엄마, 아빠, 나의 멋진 테디베어정도는 영원했으면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덫이야. 위험한 덫이지. 겉만 말짱한 썩은 사과 파이란 말야. 영원을 기약을 한다면 그건 저주가 될 수도 있어."

"저주?"

"그래. 저주. 아주 지독하지."

소년은 궁금했다. 과연 그 저주가 무엇이길래 이러는걸까. 하고.

하지만 책의 말이 다시 시작될 쯔음에 누가 소년을 불렀다.




그리고 이내, 소년은 잠에서 깼다.




서재에서 졸고 있었던 소년.

소년이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소년의 아버지는 환한 표정으로 소년을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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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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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감정의 나열

초저녁의 겨울

RomanticPanic 2017.10.19 06:12

 

 

 


가끔씩 생각나는 모든 평화가 깃들 때.
살을 애는 겨울의 차가움도, 귀를 따갑게 하는 차들의 경적도.
모든 것이 입을 다물고 고요함을 지킬 때.
조용한 평화가 찾아오고 하루종일 날카롭게 서 있던 기분도 풀어진다.
차가운 입김도 지금 이때 만큼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고,
어둠 속에 켜진 불빛은 너무나도 평화로운 행복함을 전해준다.
많은 이가 모르고 지나칠 이 작은 평화의 순간에
나는 그 순간을 놓치 않으려는 듯, 눈을 감고 이 상황에 몸을 맡긴다.

 

 

201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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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감정의 나열

K

RomanticPanic 2017.10.19 06:11



내가 매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나 할께, 한 번 들어볼래?
큼큼, 옛날에 아주 작은 검은 고양이가 한 마리가 있었어. 알지? 검은 고양이. 칠흑빛깔의 요염한 털을 가지고 있는 검은 고양이말야. 아, 맞아. 지금 말하겠는데, 재미없는 이야기라고 불평을 내놓을 사람이라면 그냥 여기서 그만둬줘. 이야기를 하는 나도 약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음 사람한테 할 때, 자신감이 떨어져서 더더욱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고만다구…….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불평을 할꺼면 그냥 지나가줘. 응? 그냥 하라고? 아, 어디까지 했지……, 아아 그래.
하지만 이 고양이는 조금 달랐어. 사람들이 다들 성격이 다르듯이, 이 고양이도 일반적인 검은 고양이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 일반적인 검은 고양이와 아주 달랐어. 아! 그런데 말야, 사실 ‘일반적인 범주’라는 게 있기나 할까? 생각을 해봐,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어. 똑같은 동물도 없지. 누구나 비슷하지만 다른 성격을,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걸? 잘 생각해봐, 사과 하나 하나도, 네가 가지고 있는 연필 하나하나도 모두 조금씩 다르지 않아? 세상에 정말로 똑같은 것은 없으니까. 그런데 ‘일반적인’이라고? 그건 단지 고정관념……아닐까? 이건 이래야 됀다. 저건 저래야 한다. 이런 것처럼 말야……. 응? 뭐라고? 아 아, 미안. 그래,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계속 이야기를 할께.
큼큼. 다시 시작해서, 검은 고양이. 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 참새, 강아지, 오리, 심지어는 민들레한테까지도 차별을 받았어. 단지 검다는 이유만으로 말야. 하하, 웃기지 않아? 미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인종차별이라는 무척이나 대단해 보이는 단어도 아니고 말이야. 정말 웃겨. 그들에게도 묘종차별(猫種差別)이 있는걸까? 아니지, 거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차별을 받았으니, 종의 차별을 뛰어 넘는 그냥, 한마디로 뭐랄까……. 똥? 엑. 모르겠다. 단어가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냥 악마라고 해줄께. 모든 생명체들이 싫어하는 ‘절대 악’적인 존재로 말야. 뭐, 네가 만약 여기에 쓸 좋은 단어가 있다면 그걸로 대체해도 좋아. 난 뭐, 상관없으니까. 아아, 그래 그래,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께.
잠깐, 뭐? 민들레한테도 차별받은게 정말 웃긴일이라고? 아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음, 그걸 설명해야 하나……, 뭐 좋아. 있잖아, 그 검은고양이는 모든 종들에게 차별을 받고 슬픔에 젖어 민들레한테 갔었단 말야. 아니, 민들레가 거기 있었다는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하여튼 검은고양이가 슬픔에 젖어 민들레에게로 갔어.
“무슨 일이야?”
검은고양이는 깜짝 놀랐지. 이곳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있다니…, 검은고양이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어. 하지만 아무도 그곳엔 없었지. 그래서 검은고양이는 잠깐 환청을 들었나 생각을 하고, 그런 환청까지 듣는 자신의 외로운 모습에 더욱 슬퍼했지. 하지만 그때였어.
“여기야, 여기!”
아까 그 목소리가 들려왔었지. 이번엔 똑똑하게 분명히 들었지. 왜냐하면 아까부터 계속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거든. 사실 이 검은고양이의 신경이 조금 둔해서 무슨 일을 하면 그 일의 여파가 일을 그만 둔지 한참 후에 오곤 했어. 그래서 사실 그것 때문에 이 검은고양이는 외톨이가 되었었을 지도 몰라, 이런 뒷북치는 고양이를 오랫동안 반겨줄 사람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말야.
하여튼 검은고양이는 거기서 솜털로 둘러싸인 하나의 꽃을 찾았어. 아주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었지.
“나는 민들레야. 너는 뭐니?”
“난...”
미안하지만 그 순간 민들레는 사라져 버렸어. 그저 검은고양이가 한번 입을 놀렸을 뿐인데,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다니, 검은고양이는 생각을 했지.
‘나의 검은털을 보고 도망쳤구나…….’
검은고양이는 더 슬퍼졌어.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 민들레가 자신을 보자마자 도망을 가다니, 검은고양이는 정말로 자신의 외모를 탓하며 슬퍼했지. 자신은 검해서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말야.
하지만 어디에서나 인권운동가가 있기 마련이지. 아니, 마음이 매우 여린 사람이랄까……. 응, 그래, 그게 좋겠다.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 매우 마음이 여렸지.
그는 검은고양이 자신이, 길을 걸을 때마다 보이는 위풍당당함에 반해 자신을 돌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데, 하지만 검은고양이는 그걸 동정심을 감추기 위한,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했지. 왜냐하면 자신은 한번도 그렇게 길을 걸어다녀본 적이 없으니까 말야. 자신은 언제나 축 처진 체로, 외톨이의 기분을 느끼며 길을 걸었었으니까. 아마, 진짜로 그가 그런 모습을 봤다고 한다면, 그건 다른 검은고양이일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검은고양이는 반항을 했지. 그가 아끼는 붓에 자신의 손톱자국을 내거나, 그의 물감에 자신의 손도장을 찍는 등, 검은고양이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로 끔찍하고 엄청난 반항이었어. 하지만 그는 그런 검은고양이를 보고 말했지.
“우린 많이 닮았구나.”
순간 검은 고양이는 ‘어디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검은 고양이의 생각을 읽은 듯이 말했어.
“여기, 너한테도 미술적 감각이 있는것 같아.”
개뿔이, 말도 안돼는 개소리 중에 개소리지. 어떻게 캔버스에 손도장 하나 찍었다고 미술적인 감각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어? 그것도 의미 없이 단지 주인에 대한 반항심으로 한번 찍은 것 뿐인데…….
하지만 그는 계속 따라다니며 좋아했어. 아주 아주~, 계속 계속~.
정말로 검은 고양이가 그에게 지쳐 쓰러질때까지 그는 자신을 너무나도 좋아했지.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싫어했어. 자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아닌, 다른 검은 고양이의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를 보고 좋아했을테니까……. 이 바보 화가자식은 그림쟁이이면서 물체의 생김새도 유심히 보지 않았단 말야. 정말로 화가 났어. 검은 고양이는 정말로 이 따듯함에 화가 났단 말야.
“좋아,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성스러운 어둠 ‘Holy Night’다!”
너무나도 성가시게 자신을 괴롭히는 그가 두 번째 겨울에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줄 때도, 검은고양이는 너무나도 화가났어. 그 따듯함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거든.
검은 고양이는 이제까지 자신에겐 따듯함이란 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그는 지겹게,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며, 검은고양이게 관심을 가졌지. 검은고양이가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 잠을 잘때……, 아니, 그가 잠에 들지 않는 모든 시간에 그는 검은 고양이를 관심어린 눈빛과 손짓으로 어루만져주었어.
하지만 무방비상태로 온 그 믿기지 않는 따듯함이 체 가시기도 전에 일이 터져버렸지. 검은 고양이, 자신만을 그리던 이 멍청한 화가자식이 쓰러져 버린거야.
‘이런 불길한 그림따위 누가 사. 왜 이것만 계속 그린거야…….’
검은 고양이는 바보같은 화가자식을 때렸지만 그는 그저 희미하게 웃고만 있을 뿐이었어. 정말 바보였지. 검은 고양이는 이 화가자식은 너무나도 바보라서, 너무나도 바보라서 검은고양이 자신만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했어.
검은 그림들, 이 멍청한 화가자식은 관찰력도 쥐뿔 없으면서 검은 고양이, 자신만을 계속 그려왔었잖아? 정말 고양이는 화가 났지. 돈도 없어서 아플때마다, 아픔을 참고 있는 이 화가자식이 정말로 돈 한푼 되지 않는 불길한 그림만을 그려 결국 병이 났다고 하면서 말야…. 정말로 검은 고양이는 온갖 자신이 아는 모든 욕을 화가한테 말했어. 냐옹, 냐옹, 냐냐옹…….
그리고 검은 고양이는 눈물을 흘렸어. 이제 이렇게……, 당신은 당신의 고양이를 다른 고양이들과 드디어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겨우 자신을 다른 검은 고양이들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고양이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는데, 드디어 당신을 인정했는데……!
…당신에게도, 검은 고양이 자신에게도 이 따듯하고 행복한 시간이 왜 오래 허락되지 않았냐고 말야.
앞서 이야기 했지만, 검은 고양이는 둔했어. 둔하디, 둔해서 지금까지 잘 느끼지 못했던 화가 녀석의 따듯함이 마구 마구 밀려왔어. 정말 뒷북고양이지?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화가의 따듯함을 이제서야 느끼는 정말로 배은망덕하고 엄청 둔한 고양이라니까.
검은 고양이는 생각했어. 이젠 당신의 그 관심어린 따듯한 눈빛을 느끼지 못하겠지. 이젠 당신의 그 따스한 손길을 느끼지 못하겠지. 이젠 당신의 그림에 내가 장난질을 쳐놔도, 내가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해 그냥 도망가더라도, 당신의 그래도 잘했다는 그 바보같은 소리를 이젠 듣지 못하겠지.
검은 고양이는 그동안 그와 함께 지낸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울었어. 비겁하게 따듯함만 안겨주고 떠나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사랑만을 주고 간 그에게, 검은 고양이는 슬피 울었어.
냐옹……, 냐옹……, 냐냐옹…….
하지만 그에게 전달될 리가 없지. 언제나 하던 망상으로 그는 검은고양이가 자신을 위해 울어주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까? 검은 고양이는 슬피 울었어. 그 울음소리는 마치 검은고양이 자신만이 알고 있던 상냥한, 따듯함만이 존재하던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울음소리였어.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 검은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순간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그때 죽어가던 그가 입을 열었어.
“고양아……. 나의 검은고양이 Holy Night아. 미안하지만… 마지막 부탁 하나 들어줄래? 이 편지를 꿈을 쫓아 뛰쳐나온 나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전해줘.”
검은 고양이는 그에게 다가가서 편지를 입에 물었어. 그리고는 그의 손에 자신의 작은 손을 올려놓았지.
“냐옹…”
검은 고양이는 깜짝 놀랐어. 따듯하기만 하던 그가 이제는 너무나도 차가운거 있지? 검은 고양이는 슬픈 눈으로 그를 쳐다봤어. 차가워져버린 그. 검은고양이는 슬퍼했지. 이젠 다시 당신의 따듯함을 느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다시 웃었어. 당신이 차가워진다 해도, 나는 당신의 따듯함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차가워져도 나는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검은 고양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길을 떠났어. 당신의 편지는 확실하게 당신의 연인에게 같다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후……, 어때? 좀 재미가 없지? 응? 뭐? 계속하라고? 잠깐 잠깐, 나도 쉬었다가 해야지 벌써 입술이 아파오기 시작한다고 목도 컬컬하고……. 응? 안하면 그냥 간다고? 야, 아니, 저기요! 계속 합니다, 계속 해요!
큼큼. 목이 조금 아프지만,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고양이는 달리고 계속 달렸어. 거대한 숲을 지나고, 마을을 지나고, 산을 넘고…….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가 지나갈 때마다 도망가거나, 주변의 돌맹이나 쓰래기를 집어 던졌어. 장사치들은 장사를 망하게 하는 흉물이 왔다라고 하며 짜증을 냈고, 주택가에선 주민들이 악마가 왔다고 하면서 돌을 던졌지. 하지만 고양이는 그래도 달렸어. 달리고 또 달렸지. 숲에서 가시덤불이 길을 방해하고 있어도, 지나가던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어도, 장사꾼들이 나무막대기를 들고 달려올때도, 검은 고양이는 달리고 또 달렸어. 성스러운 어둠. 그는 악마의 사자도, 악마도, 흉물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Holy Night, 성스러운 어둠이니까 말야. 검은 고양이는 더 이상 우울하기만한, 기분 나쁜 고양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래서 고양이는 위풍당당하게 길을 다녔지. 그가 맨 처음 발견한 어떤 다른 검은 고양이처럼, 검은 고양이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길을 다녔어. 그가 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궁금했던 순간이기도 했지.
나였으면 말야……. 그때…… 응? 아아, 미안 다시 이어갈께.
그래, 검은 고양이는 달리고 또 달렸어. 더 이상 달리지 못할 정도로 숨이 차올라도 검은 고양이는 달렸고, 가시덤불이 검은고양이의 발을 찔러 와도 검은 고양이는 달렸어. 그깟 아이들이 던지는 돌 따위 아플꺼 같아? 검은 고양이는 이겨냈어. 고통을 이겨내고, 달렸어. 나무 몽둥이에 잠시 정신을 잃어도 검은 고양이는 다시 일어나서 계속 달렸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마치 편지배달부라도 되는 양…… 검은고양이는 달리고 또 달렸지. 하지만 계속 달릴 수 만을 없는 노릇 아니겠어? 하지만 가끔씩 검은 고양이가 쓰러질 때마다 그가 없는 차가운 바닥이 너무나도 지독하게 느껴졌지. 그래서 검은 고양이는 계속 달렸는지도 몰라.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지.
‘이런 거에 질까보냐!’
검은 고양이는 정말로 대단했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그 작디작은 발로 움직여 가며 계속, 계속 움직였지. 그렇게 움직인 검은 고양이는 드디어 그의 연인의 집에 도착했어. 집에 들어선 순간 그의 연인은 검은 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랬지만, 입에 물고 있는 편지를 보고 알았지. ‘이 검은 고양이는 그의 고양이었구나…….’ 하고말야.
그녀는 검은 고양이에게서 편지를 받아 편지를 읽었지. 그리고는 이내 슬픔을 가득 담은 눈으로 변해갔지. 그녀가 편지를 계속 읽을 동안 검은 고양이는 행복감을 느꼈어.
‘혹시 나는 이날을 위해 태어난게 아닐까…….’ 하고 말야.
왜냐하면 언제나 둔한 고양이는, 언제나 뒷북만 치는 이 검은 고양이는 죽을때까지 뒷북을 쳤거든…….
검은 고양이에게 그의 연인이 자신의 입에서 편지를 받아간 순간 거대한 파도처럼 고통이 밀려왔어. 정말 뒷북 고양이라니까. 죽는 순간까지도 고양이는 뒷북을 쳤어.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기뻤다? 언제나 자신을 외톨이로 만들던 이 둔함이, 오늘 자신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었으니까. 검은 고양이는 눈을 감을 때까지도 이 행복을 잊지 않으려고 했어. 그리고 그에게 마음속으로 한마디 했지.
‘잘 전해 줬어.’
라고.
그의 연인이 편지를 다 읽었을 때, 검은고양이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어. 그녀는 검은 고양이를 보고 단번에 눈치 챘지. 이 고양이가 그녀를 위해, 그를 위해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을 말야. 그녀는 죽은 검은 고양이에게 경의를 표했어. 정말로 숭고하게 말야.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고양이가 그의 주인을 위해, 그녀를 위해 여기까지 목숨바쳐 달리고 달려왔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 작은 검은 고양이를 파묻으며 검은 고양이의 목걸이에 쓰여 있는 HOLY NIGHT라는 그의 이름에 K자를 붙여 주었어.
Holy Knight. 성스러운 기사. 검은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도 그 이름에 걸맞는 자였으니까.












…어때? 조금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지? 하지만 말야, 내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이 성스러운 기사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었어. 어때? 너도 이제 그 검은 고양이를 기억할 수 있겠니? 그 아주 작디작은 발로 한 연인의 사랑을 받았던 그 검은고양이를 말이야.











Bump Of Chicken - K





bump of chicken - k



週末の 大通りを黑猫が 步く
주말의 큰길을 검은고양이가 걷는다.

御自慢の鍵尻尾を水平に 威風堂と
자랑의 열쇠인 꼬리를 수평으로 위풍당당히.

その姿から猫は 忌み嫌われていた
그 모습으로부터 고양이는 몹시 미움받았다.

闇に溶ける その體目掛けて 石を投げられた
어둠에 녹는 그 몸을 향한 돌을 맞았다.

孤獨には慣れていた 寧ろ望んでいた
고독에는 익숙해졌다, 오히려 바라고 있었다.

誰かを思いやる事なんて 煩わしくて
누군가를 동정하는 일 따윈 성가시니까.

そんな猫を抱き上げる 若い繪描きの腕
그런 고양이를 안아 올리는 젊은 화가의 팔.

「今晩は 素敵なおチビさん 僕らよく似てる」
「안녕, 멋진꼬마야. 우린 많이 닮았구나.」

腕の中も がいて 必死で引っ搔いて
팔에 안겨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할퀴어.

孤獨という名の逃げ 道を
고독이란 이름의 도망갈 길을─

走った 走った 生まれて初めての
달리고, 달렸다. 태어나서 처음의

優しさが 溫もりが まだ信じられなくて
상냥함이, 따스함이 아직 믿어지지 않아서.

どれだけ逃げたって 變わり者は付いて來た
아무리 도망쳐도 괴짜는 쫓아왔다.

それから猫は繪描きと 二度目の冬を過ごす
그리고 고양이는 화가와 두 번째의 겨울을 보낸다.

繪描きは 友達に名前をやった「黑き 幸」“Holy Night”
화가는 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검은 행복」“Holy Night”

彼のスケッチブックは ほとんど黑盡くめ
그의 스케치북은 검은색 투성이,


黑猫も 初めての友達に くっついて甘えたが ある日
검은고양이도 처음으로 생긴 친구에게 안겨 응석부렸지만 어느 날─

貧しい生活に 倒れる名付け親
어려운 생활에 쓰러지는, 이름을 지어줬던 아버지.


最後の手紙を書くと 彼はこう言った
최후의 편지를 쓰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走って 走って こいつを屆けてくれ
“달리고, 달려서 이녀석을 전해줘.

夢を見て飛び出した僕の 歸りを待つ戀人へ」
꿈을 쫓아 뛰쳐나온 날 기다리고있는 연인에게…”

不吉な黑猫の繪など賣れないが
불길한 검은고양이의 그림 따윈 팔릴 리가 없지만,

それでもアンタは俺だけ描いた
그래도 넌 나만을 그렸다.

それ故 アンタは冷たくなった
그래서 넌 차가워졌다,

手紙は確かに受け取った
편지는 확실히 받았다.

雪の降る山道を 黑猫が走る
눈이 내리는 산길을 검은 고양이가 달린다.

今は故き親友との約束を その口に銜えて
지금은 없는 친구와의 약속을 그 입에 물고서.

「見ろよ, 惡魔の使者だ!」 石を投げる子供
“저기 봐 악마의 사자다!”돌을 던지는 아이들.

何とでも呼ぶがいいさ 俺には 消えない名前があるから
뭐라고 불러도 좋아, 나에겐 지울수 없는 이름이 있으니까.

「Holy Night」 「聖なる 夜」と 呼んでくれた
“Holy Night”「성스러운 밤」이라고 불러주었다.

優しさも溫もりも 全て詰め口んで 呼んでくれた
상냥함도, 그 온기도 모두 모아 불러주었다.

忌み嫌われた俺にも 意味があるとするならば
미움받는 나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この日のタメに生まれて來たんだろう どこまでも 走るよ
이 날을 위해 태어난 거겠지, 어디까지라도 달릴꺼야.

彼はたどり着いた 親友の故鄕に
그는 가까스로 도착했다, 친구의 고향에

戀人の家まで あと數キロだ
연인의 집까지는 이제 몇 키로─

走った 轉んだ すでに滿身創痍だ
달리고, 넘어졌다. 벌써 만신창이다.

立ち上がる間もなく 襲い來る罵聲と 暴力
다시 일어설 틈도 없이 쏟아지는 욕설과 폭력.

負けるか俺は Holy Night 千切れそうな手足を
질까보냐, 나는 “Holy Night”끊어져버릴 것 같은 팔다리를

引き摺り なお 走った 見つけた! この家だ!
다시 끌고 달렸다, 찾았다! 이집이다!

手紙を讀んだ戀人は もう動かない猫の名に
편지를 읽은 연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고양이의 이름에

アルファベット 一つ 加えて庭に埋めてやった
알파벳 하나를 더해 정원에 묻어주었다.

聖なる騎士を埋めてやった
성스러운 기사[Holy Knight]를 묻어주었다─








 










덧, 검은 고양이 이야기일까.....








 

20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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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내가 더 어두운거 같아..

-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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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감정의 나열

어떤 이야기. 1.

RomanticPanic 2017.10.19 06:09




그날도 노을빛이 세상을 깊게 물들였던 날이었다.
노을빛 속 사물들은 주황빛깔과 주황색 내음을 내뿜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짧은 자신의 아름다운 추억을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24시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체험하는 시간은 잠시, 노을이 질 때, 그 순간이 아닌가 하고.
“지금, 떠나는 거야?”
“……응.”
갈색 머리와 노을빛의 조합은 숨이 막힐 듯한 마력을 내뿜는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순간, 그녀를 바라본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럼…… 언제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못 올 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긴 시간동안 그동안의 여러 추억이나, 그녀를 위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도 못한 체, 그저 짤막한 직구를 던져버렸다.
“……”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녀에게, 짧은 노을빛이 물든 시간에, 나는 더 이상 어떤 물음도 생각해 내지 못한 체로 묵묵히 그녀와 함께 길을 걸었다.
그래도, 그래도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저기, 어디 앉을까?”
“응”
벤치에 앉아도,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그녀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응? 왜?”
나의 시선을 느낀 듯, 아까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자세로 땅만 묵묵히 쳐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에 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마주본 눈.
순간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은 정말로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었다.
“그, 그…… 너를 기억하고 싶어서.”
백지장처럼 하얗게 된 머릿속엔 내 입에서 나올 말의 검토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심장에서 나온 말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밖으로 나와버렸다.
“어?”
그녀의 얼굴이 붉으스름해졌다. 아니, 노을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을 내가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멍하게 있더니,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나도 너를 기억하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의 두 눈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은 체로 굳어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노을빛이 사라져갈 때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도 나를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만보고 있는데도, 나는 그녀의 심장에 귀를 갖다댄 것처럼 그녀의 심장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를 깊숙이 더 따듯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을빛은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해어짐의 시간에도 나와 그녀는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안녕.”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생각난다.
특이할 것 없는 그 한마디. 하지만, 그녀와 제일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느꼈던 나는 그 짧은 한마디의 단어가, 이 세상 어떤 수식어나, 명언보다도 아름답고 가장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제 안녕. 나의 첫 번째 사랑이여.


20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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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감정의 나열

노을잎

RomanticPanic 2017.10.19 06:09




너무나도 앙상한 나뭇가지에

보다 못한 노을이 잎을 달아준다.





 20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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